2019.8.31. 퇴임을 앞두신 정해룡 교수님의 칼럼이

2019.06.17 교수신문의 데스크칼럼 란에 실렸습니다.

↓ 이하 기사내용 ↓



  정해룡교수님(영어영문학부)


그동안 정들었던 대학을 이제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몇 년 전부터 2019년 8월말이면 퇴직할 것이라는 담담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대학본부로부터 퇴직을 위한 공적조서를 내라는 연락을 받으니 ‘이제 나가야 하는 구나’라는 실감을 하게 된다. 막상 떠나려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하면서 연구실을 둘러본다. 교수가 되기 전 제일 갖고 싶었던 것이 나만의 방이었다. 집에서 잠자는 것 빼고는 아마도 이곳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연구실은 그동안 교육과 연구의 산실 역할을 했지만 나에게는 또 다른 안식처요 도피처였다. 주말에 어쩌다 아내와 다투기라도 하면 화를 삭이기 위해 그냥 집 밖으로 나와 아내 몰래 의기양양하게 나의 연구실로 향한다. 돈도 지불하지 않고 언제든 내가 원하는 시간만큼 마음대로 머무를 수 있는 공간, 나의 연구실을 이제 비워야 한다. 연구실 한편에 난이 몇 그루 있는데 이들도 정리대상이다. 그동안 나의 담배연기에 불평 한마디 없이 잘 자라준 난에 감사할 따름이다. 나도 법정스님처럼 무소유의 첫 단계를 실천하려 한다.
모든 인문학자들이 다 그렇듯이 나의 연구실에는 책이 꽤나 많다. 이 중 대부분은 미국 유학 때 구입한 것으로 귀국할 때 비싼 운송비를 들여 가져왔다. 당시에 이 돈으로 땅을 샀더라면 지금쯤 노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농담 삼아 이야기 한 적도 있다. 집도 좁은데 이 케케묵은 책들을 집으로 옮기려고 하니 아내의 눈치가 보인다. 반대는 안하지만 내 스스로도 다시 전공서적을 집어들 것 같지도 않다. 대학도서관에 기증을 하려니 반기지도 않는다. 책을 없애자니 마치 조강지처를 버리는 듯 죄의식이 들어 서가에서 책을 뽑았다 놨다를 반복하면서 갈등한다. 고심 끝에 해운대 달맞이에 있는 ‘추리문학관’을 운영하는 추리소설가 김성종 선생님께 책을 기증하고 싶다고 하니 쾌히 받아들이시고, 별도의 서가도 만드실 모양이다.
얼마 전 타 대학에 근무하는 후배교수가 오랜만에 전화를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이번 학기가 마지막이라고 말했더니 정말 부러워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동료교수들은 시원섭섭하시죠라고 묻기도 하고, 어떤 분은 진심인지 모르겠지만 자기도 빨리 학교를 나가고 싶다고 한다.
나의 경우 솔직히 퇴직을 반기고 있다. 무엇보다 대학에 몸담고 있으면서 늘 쫒기는 생활에서 벗어난다는 해방감 때문이다. 바쁘면 좋다고 하지만 뭔가에 쫓기게 되면 부실한 결과를 낳기 때문에 마음 한 구석은 편치 않았다. 능력이 부족해서 그러하겠지만 강의준비도 그랬고 연구도 마찬가지였다. 우스갯소리로 논문필자와 심사위원외에 아무도 읽지 않는다는 논문 쓰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논문을 쓰면서 나의 목소리보다는 외국비평가의 견해에 더 의존함으로써 외국문학전공자의 한계를 느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이제 더 이상 각주 달린 논문과 제출마감 시한에 매달리지 않으니 그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그렇다고 무위도식할 생각은 전혀 없다. 논문식 글쓰기에서 탈피하겠지만 나의 축적된 지식을 농축시켜 일반 대중들이 즐길 수 있는 책을 쓸 계획을 세우니 벌써 마음이 설레인다.
30년 가까이 근무한 대학을 떠나는 것은 분명 섭섭한 일이다. 그런데 왜 나는 섭섭하기 보다는 시원할까? 나는 오늘날 대학의 모습에 너무 실망해왔기 때문이다. 요즘 대학에는 자율성이 없다. 모든 것을 교육부가 틀어쥐고 대학에 감 놔라 배 놔라고 지시하면 대학은 속수무책으로 따른다. 교육부 방침을 어길 시 재정지원과 연계하겠다며 으름장을 놓는다. 여기에 대학은 한 술 더 떠 재정지원을 받아 내려고 교육부의 입맛 맞추기에 혈안이다.
지금 대학에는 정말 우스꽝스러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교수활동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들을 점수화하여 평가함으로써 교수들을 통제하고, 교수들은 이러한 제도를 순응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교내 성폭력교육에 참여하면 몇 점 부여한다는 현실 앞에 교수들은 불평 없이 꾸역꾸역 모여든다. 마치 초등학생이 봉사점수 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교수들의 현주소다. 이러한 현실에서 벗어나니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햄릿의 대사가 떠오른다. 햄릿이 그의 친구들,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텐에게 덴마크는 자신에게 ‘감옥’이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그럴 때 햄릿은 “세상에 좋거나 나쁜 것은 없다. 오로지 생각이 그렇게 만들 뿐이다”라고 말하면서 여하튼 덴마크는 그에게 감옥이라고 말한다. 햄릿이 말한 것처럼 대학이 나에게 감옥이었단 말은 아니다. 이 대사는 모든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듯이 적어도 나에게 현 대학의 모습은 정상이 아니다.
이 글에서 제도권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지만, 한편으로는 대학만한 곳이 있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동안 젊은 대학생들과 같이 생활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복 받은 것이고, 더욱이 부족한 내가 어디서 매일 ‘교수님’이란 존칭을 들으며 살 수 있을까.

출처 : 교수신문(http://www.kyosu.net)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44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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